본인의 모친표 비빔밥 재료(아직 밥을 붓기 전)

 

 

  얼마 전 제사가 있었다.

  제사를 지낸 이후 여러 날 동안은 제사 때 장만했던 나물을 이용한 비빔밥을 먹어야  한다.

  비빔밥이라고 하면 된장비빔밥, 육회비빔밥, 꼬막비빔밥, 생선회비빔밥, 산채비빔밥, 멍게비빔밥 등등 재료와 지역별로 여러 비빔밥이 있지만, 제사 때 쓴 나물을 넣은 비빔밥은 그 명칭을 몰라 그냥 '제사나물 비빔밥'이라고 칭하고자 한다.

 

  이 비빔밥은 평소 집에서 제사를 지내왔던 나에게는 그리 특별한 것도 없는 음식이지만, '헛제삿밥'이라는 메뉴로 영업을 하는 식당도 있는 걸 보면 제사를 지내지 않는 집에서는 제사 나물을 넣은 비빔밥을 별미로 치는  모양이다.

  나 역시 특별한 것이 없다고 표현하였으나, 이 말은 자주 먹는 음식이어서 특별하지 않다는 뜻이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제사를 지낸 후에 식구 여럿이 둘러앉아 먹는 '제사나물  비빔밥'은 늘 맛이 있다. 단순히 평소의 저녁식사 시간을 넘겨서 생긴 시장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제사나물 비빔빕'을 비비는 방법이나 순서를 보면, 자신이 원하는 일정한 순서를 지키는 사람도 있고, 처음부터 고추장과 참기름을  밥에 뿌려 다른 재료와 함께 비비는 사람이 있다.

  그 중에 나는 제사나물 비빔밥이든, 다른 종류의 비빔밥이든 상관없이 밥을 제외한 다른 비빔밥 재료에 고추장이나 참기름은 첨가한 후 먼저 그 재료들을 충분히 비빈 다음에 나중에 밥을 넣어 비비는 스타일이다.

  처음부터 밥을 섞은 후에 비빔밥 재료들과 함께 비비면 그 과정에서 밥알이 압력을 받아 탱탱한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니다, 그보다 내게 더 큰 이유는 밥에다가 먼저 참기름을 묻히면 미끈마끈한 참기름이 밥알 표면을 코팅하는 것같은 작용을 해서 고추장이나 그 밖의 다른 액체(각종 야채를 버무르는 과정에서 생긴 것)가 밥알에 스며들지 못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더 큰 이유일 것이다.

 

  한편 80이 넘은 나의 모친은 비빔밥을 비비는 것에 있어서는 나와 반대의 취향이다.

  그녀는 비빔밥 재료를 비비기 전에 밥을 먼저 넣은 후 참기름이 야채와 같은 다른 재료에 닿지 않도록 밥알의 표면에 직접 참기름을 뿌려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계신다.

  이유는 참기름을 먼저 밥알에 발라야 서로 붙어있던 밥알과 밥알이 쉽게 분리가 되어 다른 재료들과 함께 비벼지기가 쉽다는 것인데, 칼국수 면발을 만들 때 밀가루 반죽이 서로 붙지 않도록 겹치는 부분에 밀가루를 발라주는 걸 생각하면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비빕밥을 먹을 때 참기름은 어느 단계에서 어떤 재료에 뿌려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모친과 토론을 할 생각은 없다. 어차피 상대방을 설득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등과 같은 기관에서 행한 실험결과로 검증된 것이 아닌 주관적인 취향에 불과하며, 뭐부터 먼저 비비든 뱃속에 들어가면 인체가 흡수하는 영양소에는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성분의 음식물을 먹더라도 선호하는 취향대로 먹고자 하는 것이 인간이고, 취향대로 먹어야 혀가 즐겁다. 그래서 난 오늘도 밥을 붓기 전에 비빔밥 재료에 먼저 참기름을 넣고자 하는 작은 저항을 하려고 하였으나, 언제나처럼 결과는 실패였다.

  내 방법이 나에게는 양보와 타협이 가능한 개인의 취향일 뿐이지만, 나의 모친에게는 말 그대로 이데올로기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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